from the other land
by 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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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좋아하는 시 중에,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 도종환 시인의 시였을 거다. 아아, 듣고보니 그렇지 않은가. 사랑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인데 어찌 계속 옳은 일들만이 있을 것이며 어찌 계속 그 감정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또 좋아하는 시 중에, '당신은 심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잖아요'라는 구절도 있다. 이건 아마 중국의 문호 루쉰의 '사랑의 신'의 글귀일 것 같다. 이것 또한 그러하지 않나. 우리는 심장도 가진 사람인데, 심장은 멈추기도 하고 파르르 떨기도 하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사랑이라고 그 보다 강하겠는가.

  절대적인 규범의 창틀 밖으로 늘 알 수 없는 세계가 보였다. 나는 언제나 창 옆의 벽에다 '외출금지'라고 쓰여진 팻말을 꽝꽝 박으면서 그 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먼저 지었고, 집이 다 지어지면 집에 걸어 둘 팻말에 어떤 말을 쓸지 고심했고, 그 뒤엔 집에 틀어박혀 그팻말을 박으면서 그동안의 연애를 이어왔다. 그래서 내겐 온갖 이상적인 연애와 사랑의 관념이 모조리 작동하고 있다. 사랑은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이를 존중할 것, 혼자서 조급해하지 말 것, 무엇이든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생각할 것- 등등. 그 절대적인 가치관은 수도 없이 많을 거다. 그토록 내게 있어 사랑한다는 감정은 세밀하게 짜여진 태양계와도 같아서, 사랑을 가운데 두고 나와 내 관념들은 둥실둥실 궤도를 돌았다. 똑같은 궤도를 돌다보니 항상 창 밖의 세계가 궁금할 수 밖에. 그러나 절대로 그 호기심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단지 알고 싶을 뿐이지, 그 길을 걷겠다는 것이 아니다.

  매트릭스에서 멋진 까만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었다. "자네는 확실히 그 차이를 알게 될 거야.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그래, 나는 그 차이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규범 밖의 세계를 알고 싶다. 그러나 그 세계를 걷고 싶지는 않다. Sophie나 통 오빠는 내가 너무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은 연애관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래, 나는 시대에 맞지 않은 연애관을 가지고 살테다. 그게 나에게 맞는 것이든 아니든,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든 그냥 의무감에 하는 것이든 상관 없다. 난 이렇게 살 거야. 내 태양만 바라보고 내 집 안에서만 평생을 살테다. 창 밖의 세계란, 이렇게 내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나 자신이 당하는 일을 보면서도 충분히 알고 느낄 수 있다. 내가 내 집 밖으로 나갈 일은 없어도 돼.

  이렇게, 나는 두 가지 가면을 쓰고 지금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한 쪽에서 사랑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인데 규범이며 가치관이 무슨 소용이냐고 열정적으로 토로한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그들의 세계에 내 발을 담글 필요가 없다고, 지금 내 가치관대로 살면 되는 거라고 딱딱한 목소리로 반복하고 있다.
  그래, 나는 분명 인생의 이러한 부분을 좋아한다. 절실하게 매달려야 하는 이유, 존재의 허망함에 대항하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고고하고 뻣뻣하게만은 살아갈 수 없기에 진창에서 구르기도 해야 하는 얄궂음,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의 이성'에 구멍을 뚫는 술의 냄새-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연애에 관한 한 이렇게 사람이 보수적으로 돌변해 버리는 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인간의 감정은 봄 하늘의 별자리보다도 복잡하게 엉켜있나보지.

  가끔 나도 내 자신이 답답할 때면 곧잘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난 2년동안 나는 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제는 뭐가 어떻게 엉켜 있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더 답답해졌다. 지금의 내 사랑은, 내게 대답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아니, 과연 인간의 사랑이 성숙해질 날이 올 수 있을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런 쓸데없는 말이나 주절거리는 사이에 나는 또 성숙해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는 연애와 함께 점점 퇴행하고 있는 걸까.
by _D | 2009/05/30 01:54 | 연애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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